[루트쇼] 160915 - Holiday Dream

Holiday Dream

written by. SEOHWI

오늘은 미트로프를 처음 만든 날이었다. 늘 그런대로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어 오는 쇼와 달리, 루트는 요리에 있어서 재능도 흥미도 가지지 못했다. 그대로만 따라한다면 누구나 성공한다는 레시피를 가지고도 식탁에 앉은 거의 모든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을 보면 아마 정석대로 행동하는 것 자체에 큰 재능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쇼는 루트가 요리를 하려고 할 때마다 식재료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며 앞치마를 빼앗아 들었고, 이제 막 6살이 되어 해리포터에 깊이 빠진 P는 루트의 요리 실력을 P(Poor:형편없음)으로 평가했다.

그럼에도 때로는 루트에게 주방을 맡길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면 쇼가 어린아이에게 보이기에는 너무 끔찍한 상처를 입어서 집에 들어오지 못하거나, 두 어른의 싸움이 도를 지나치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받은 P가 루트에게 특별식을 주문하고 본인은 친구 집으로 피신하거나, 쇼가 P와 놀아주느라 꼼짝도 하지 못하는 날.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루트는 쇼가 왜 차라리 외식을 하자고 말하지 않는지 의문이었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했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새로운 레시피에 도전했다.

방금 오븐에 들어간 미트로프는 끝내주는 냄새를 집안 가득 풍기고 있었지만, 루트는 냄새만큼 좋은 속임수도 없다는 걸 수차례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조금 겸손해지기로 한 루트는 오랫동안 입고 있던 앞치마를 벗어 식탁 의자에 걸어두고 거실로 나왔다. 늦은 오후의 하늘은 방금 전까지 소나기를 쏟아 부었지만 어느새 맑게 개었고, P는 오전에 클리닝을 마치고 새로 깐 카펫에 앉아 귀에 장난감 청진기를 꽂은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쇼는 시름시름 앓는 시늉을 하며, 입고 있는 크롭탑을 가슴 바로 아래까지 끌어올려 잡고는, 장난감 청진기로 제 배 여기저기를 짚고 있는 아이의 의사놀이에 장단을 맞춰주었다. 루트는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지만 다행이 들키지 않았고, 벽에 기대어 서서 오븐의 타이머가 울릴 때까지 그 한가로운 광경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의사선생님, 뭐가 들리시나요?”

질문에도 대답 없이 눈을 내리감은 채 한참을 가만히 있던 P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쇼를 올려다보았다.

“잘 몰라요. 어떤 증상이 있어요?”

“구개편도가 비정상적으로 부풀었고 발열과 근육통을 동반하는 걸 보니 급성상기도염일 가능성이…….”

쇼는 쉰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잘게 기침했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과장된 연극이었지만 아이를 속이기에는 충분했는지, P의 표정이 순식간에 두려움과 슬픔으로 얼룩졌다. 쇼가 조금만 더 목을 부여잡고 기침하면 당장 울음을 터뜨릴 기세였다. 루트가 이 무서운 의사놀이를 끝내려고 입을 열었지만 오븐의 알람 소리가 타이밍 좋게 끼어들었고, 앉아있던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주방 입구에 서있는 루트에게로 향했다.

“-판도라, 손 씻고 와야지?”

루트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P와 시선을 맞추었고, P는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을 손등으로 비비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아이의 잰걸음이 욕실 안으로 사라지자, 루트의 시선을 느낀 쇼가 본인의 결백을 주장하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애틋하면서도 묘하게 끈적한 루트의 눈빛에 약간의 질책이 섞여있는 탓이었다.

“애를 울리면 어떡해.”

“네가 할 말은 아닐 텐데.”

사실 아이를 울리는 일은 쇼보다 루트의 특기에 가까웠기에, 루트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듬뿍 담겨있었다. 쇼는 일어서서 습관적으로 바지를 털며 루트를 힐끗 쳐다보곤 의심스러울 정도로 완벽한 미트로프의 향 때문에 인상을 찌푸렸다.

“섭취해도 인체에 아무 이상 없도록 만든 거 맞지?”

“먹어보긴 하겠다는 거야? 상냥하네.”

쇼가 주방으로 들어가면서 루트를 강렬하게 째려보긴 했지만, 군침이 돈다는 것을 부정하진 않았다. 식탁에 세 개의 접시, 세 세트의 포크와 나이프를 차려두고 P가 돌아오길 기다리기까지, 미트로프는 계속 불이 꺼진 오븐 안에 있었다. 식탁에 둘러앉은 세 사람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뜯어보기 위해 트리 아래에 모여 앉은 아이들처럼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마침내 뜨거운 트라이를 꺼냈을 때, 트리 꼭대기까지 쌓여있던 기대의 꾸러미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반사적으로 터져 나온 탄식을 제외하면 모두 똑같이 말을 아꼈고, 가끔은 기적이 일어나도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End.

* P(Poor:형편없음) :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 학교 호그와트의 성적 등급 중 하나. 순서대로 O(Outstanding:특출함), E(Exceeds Expectations:기대이상), A(Acceptable:보통), P(Poor:형편없음), D(Dreadful:끔찍함), T(Troll:트롤수준)으로 나뉘며, P 이하는 Fail로 간주된다. (출처:호그와트로의 여행,http://hogwarts.pe.kr)